1990년대 K-POP전쟁 : H.O.T. vs 젝스키스 팬덤 대립

2025. 3. 18. 22:03라떼비디오

 

안녕하세요! 오늘은 1990년대 후반, 대한민국 가요계에서 가장 치열했던 팬덤 대립 중 하나인 H.O.T.와 젝스키스 팬덤 간의 대립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특히 1997년부터 1999년까지 두 그룹은 가요계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며, 단순한 인기 경쟁을 넘어선 극심한 팬덤 전쟁을 벌였습니다. 이 시기는 K-POP의 1세대 아이돌 팬덤 문화가 형성된 시기이기도 한데요, 많은 분들이 2012년 방영된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서도 이 뜨거운 팬덤 경쟁 장면을 떠올리실 것 같습니다. 저 역시 그 드라마를 보면서 당시의 열기를 다시 느꼈는데요, 그때의 기억과 1세대 팬덤 문화의 시작과 특징에 대해 블로그 형식으로 길게 풀어보겠습니다.

H.O.T. vs 젝스키스, 시작부터 달랐던 라이벌 구도

H.O.T.는 1996년 SM엔터테인먼트에서 데뷔한 대한민국 최초의 '기획형 아이돌' 그룹으로, 데뷔부터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10대 소녀들을 중심으로 압도적인 팬층을 확보하며 1997년에는 그들의 존재감이 전국을 뒤덮었습니다. 이들의 상징 색깔은 펄화이트로, 콘서트장과 방송국 앞에는 펄화이트 풍선과 머플러로 무장한 팬들로 가득 찼죠.

그런 H.O.T.의 독주에 제동을 건 것은 1997년 DSP미디어가 내놓은 젝스키스였습니다. 그들의 등장과 함께 가요계는 양대 라이벌 구도가 만들어졌습니다. 젝스키스의 상징색은 노란색. 이렇게 펄화이트 대 노란색 풍선과 응원봉이 각 방송국 앞과 공연장에서 치열하게 맞붙는 광경이 일상이 됐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응답하라 1997'에서도 이런 모습을 그려냈다는 것입니다. 주인공 성시원(정은지 분)이 H.O.T. 팬으로 등장하고, 친구 유윤재(서인국 분)가 그런 시원을 보며 질투와 애정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죠. 드라마는 다소 과장된 면이 있었지만, 팬덤의 열기를 잘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심했던 팬덤 간의 대립, 때로는 폭력으로

1997년부터 1999년까지 H.O.T.와 젝스키스 팬덤 간의 대립은 그야말로 전쟁이었습니다. 방송국 앞에서는 응원 자리를 두고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고, 팬클럽끼리 몸싸움으로 번지는 일도 흔했습니다. 특히 인기 가요 프로그램 방청석 배정이나 출근길 대기 중에 서로 간의 신경전은 극에 달했습니다.

실제로 '출근길 쌍방 폭행 사건'은 전설로 남아 있습니다. H.O.T. 팬들과 젝스키스 팬들이 방송국 앞에서 대기하던 중 시비가 붙었고, 결국 경찰이 출동하는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당시 스포츠 신문에는 '10대 소녀들의 응원전, 폭력 사태로 번져'라는 헤드라인이 실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극단적인 사건 외에도, 라이벌 팬덤 간의 경쟁은 때로는 유쾌하고 에너지 넘치는 문화로 승화되기도 했습니다. 팬들은 더 멋진 응원 도구를 만들고, 더 독창적인 응원법을 고안하며 '서로 이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지금의 응원봉과 팬덤 문화의 뿌리가 이 시기에 자리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세대 아이돌 팬덤 문화의 시작과 특징

H.O.T.와 젝스키스 팬덤 대립은 단순히 싸움으로만 남지 않았습니다. 이 시기, 대한민국에는 1세대 아이돌 팬덤 문화가 본격적으로 형성되었습니다. 각 팬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응원 색깔, 응원 구호, 공식 팬클럽 가입 문화 등을 만들어냈습니다.

당시 팬덤의 가장 큰 특징은 '줄 서기 문화'입니다. 음악 방송 출근길과 공개방송 대기 줄은 경쟁의 현장이었고, '몇 번째 줄'에 섰는지가 팬심을 증명하는 지표이기도 했죠. 또한, 팬레터 쓰기, 손편지 전달, 팬카페 활동 등도 활발히 이루어졌습니다. 물론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기라 PC통신 동호회(하이텔, 천리안 등)를 통한 정보 공유가 주류였습니다.

또한, 당시에는 지금처럼 세련된 응원봉이 없어서 풍선이 응원의 상징이었습니다. 공연장에서는 각 팬덤 색깔의 풍선이 하늘을 가득 메웠고, 그것만으로도 팬덤의 규모와 결속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그 시절 팬덤은 단순히 좋아하는 가수를 응원하는 것을 넘어 또 하나의 '정체성'이었습니다. 중학생, 고등학생들은 방과 후 가방 속에 풍선과 싸인지를 넣고 음악 방송에 참여하기 위해 KBS, MBC, SBS 앞에 모였고, 가족이나 학교 몰래 지방에서 서울로 상경하는 일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 열정과 에너지는 2020년대 팬덤 못지않았고, 오히려 더 순수하고 뜨거웠다고 회상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결론: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그 시절의 열기

2025년인 지금, K-POP은 세계적인 장르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나 H.O.T.와 젝스키스의 팬덤 전쟁이 있었던 1997~1999년은 한국 팬덤 문화의 원형이자 뿌리였습니다. '응답하라 1997'이 방영될 당시 많은 세대들이 공감하며 눈시울을 붉혔던 것도 그 시절이 가진 순수함과 열정 때문이었겠죠.

지금 아이돌 팬덤은 세련된 응원봉과 팬덤 앱,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소통합니다. 하지만 그 출발점은 펄화이트 풍선과 노란 풍선이 가득했던 상암동과 여의도의 방송국 앞이었습니다. 저 또한 그 시절 방송국 대기줄에 섰던 한 사람으로서, 지금도 그때의 열기와 두근거림을 잊지 못합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중에도 그 시절을 함께했던 분들이 계시다면 댓글로 그 시절의 추억을 함께 나눠보는 건 어떨까요? 세월이 흘러도 마음속 열정은 영원합니다. 감사합니다!